파리 도시 속에서 예술을 걷는다. 아트보이의 감각은 파리 거리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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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과 무라카미 다카시를 통해 바라본 예술적 자유의 공간. 길 위에서, 우리는 때때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술을 만난다. 그것은 갤러리 벽에 걸린 유리 액자 속 그림이 아니라, 낡은 벽돌 담장 위, 오래된 버스 정류장, 혹은 사람들의 일상적 시선이 스치는 도시의 공간 속에 불쑥 피어난다. 프랑스 출신의 아티스트 JR은 바로 그러한 장면을 현실로 만드는 존재다. 그는 캔버스를 넘어서 ‘거리’를, ‘세계’를 가장 큰 아트 갤러리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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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의 작업은 단순히 사진을 확대해 붙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을 통해 사회에 묻고, 정치적 경계와 제도적 장벽에 대항하는 조용한 반란이자 질문이다. 그는 익명의 얼굴을 드러낸다. 브라질의 빈민가에서, 케냐의 시장에서, 프랑스의 외곽에서,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 위에서.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평범하지만, 바로 그 평범함이 세상의 이면을 드러낸다. “누가 정체성을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은,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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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중요하다. 얼굴 하나하나가 세계를 구성하는 셀이다.” JR은 예술을 미술관에 가두지 않는다. 그는 거리에서, 담벼락에서, 지하철역에서 ‘전시’를 하고, 그 전시는 무료이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래서 JR의 작업은 ‘예술의 민주화’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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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반대로, 혹은 또 다른 결로 예술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간 작가가 있다. 일본 출신의 무라카미 다카시다. 그는 애니메이션과 만화, 하위문화와 고급 예술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독자적인 ‘슈퍼플랫(Superflat)’ 미학을 구축해왔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일본 예술 전통의 평면적 감각과 현대 서브컬처의 시각 언어를 결합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루이비통과의 협업으로 명확히 ‘예술은 비즈니스다’라는 선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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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에는 의문스러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웃는 얼굴이지만 눈물이 흐르고, 꽃 모양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감정이 얽힌다. 그것은 무라카미 다카시가 말하는 ‘아름다움과 파괴’, ‘희망과 공포’가 동거하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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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던 그가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만화 너머’를 보기 위해서였다. 대학에서 전통 미술을 공부하며 그는 일본 전통화와 현대적 감각을 결합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곧 글로벌 예술계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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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이 ‘거리’를 캔버스로 삼았다면, 무라카미 다카시는 ‘자본’을 매개로 예술의 전략적 방향성을 넓혀나갔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공간, 다른 방식,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둘 다 ‘예술은 살아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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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보이가 이들의 작업에 매혹된 이유는 단순히 화려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지닌 일관성, 그리고 자신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세계를 ‘현실로 옮겨오는 태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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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예술은 아트보이에게 말한다. “모두가 평등하다면 중요한 사람도 없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없어지는 게 아닐까?” 아트보이는 아직 그 질문에 대해 정확히 답할 수 없다. 아니, 누가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게 또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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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때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존재하면서, 다만 그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우리는 그 질문을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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